8. 우리는 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가?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가? 아니면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선행을 해야 구원받는가?> 이 글을 통해 왜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지, 그 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다음은 어떤 한인 목회자가 그의 유튜브에 올린 설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는 지금까지 구원의 확신만을
가지도록 세뇌하며, 잘못 가르쳐 왔기 때문에, 교인들이, 나는 이미 믿고 구원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삶을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 변하지 않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순종이 생명이다. 불순종은 사망이다. 성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위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교회(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구원의 확신만을 가지도록 잘못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삶을 살아도(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우리의 혼이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개신교회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구원의 확신이 중요하기 때문임),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즉, 믿음이 전혀 없는 교인들에게조차,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만일 어떤 목회자가 그러한 요구를 한다면 그는 정상적인 목회자가 아니고 마치 구원파와 같은, 이단, 사이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영적인 일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인 믿음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고 그 상태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는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올바른 목회자라면 그런 믿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에게 분명, 예수님의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바로 전해서 그가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한 후, 구원 얻은 증거로, 물 세례를 베풀 것입니다.
한 미국인 목회자도 위의 한인 목회자와 비슷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용구절: 마 7:21-23).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성화(sanctification)를 이루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말해도 성화의
증거가 없으면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질 때에만 비로소 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목회자가
설교 말씀을 마치고,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불러내어(Altar Call)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Sinner’s Prayer)를
하게 해서, 그들이 구원 받았슴을 선포하거나,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Street Evangelism), 그 즉시로 영접기도를 하게 해서 그들이
구원받았슴을 선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단 한번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해서, 그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참된 믿음은 우리가 단 한번의 설교를 들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ltar Call이나 거리전도(Street Evangelism)를 통해서 사람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자신의 그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누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믿을 수 있다.” 그 말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만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단 한번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도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여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슴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엡 2:8). 하나님의 진리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 목회자는 Altar
Call이나 거리전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접기도를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또, 왜 우리가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의 말은 분명 성경에 위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가 믿음의 의미를 올바로 정의하지 않은 채 믿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에서, 믿는다는 말은, 우리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지식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heart)을 열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 마음(heart)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믿음(faith)이 아닙니다. 또한,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믿으면, 예를 들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사람으로만 믿으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증인들의 경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라고 말함; 무슬림들의 경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만
여김; 종교인들의 경우: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만 여김). <주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의 부자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이지 피조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의미합니다>.
종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faith)의 의미를 모르고 믿음을 말하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가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선행을 해야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faith)의 정의를 올바로 내린 상태에서 믿음을 말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정의를 올바로 내린 상태에서 믿음을 말하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다만 자신의 불완전한 이성이나 감정으로 예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혼이나 육으로는 바로 알 수가 없고 우리의 거듭난 영(regenerated spirit)으로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은 영(dead spirit)이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born again) 하는 이유입니다(요 3:5-7).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으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게 하십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단순한 사람으로가 아니고 태초부터 계시던 하나님,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으로(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고전 2:6-14).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참조>: 웹블로그의
글: <10. 하나님의 자녀로의 거듭남, 성령의 세례와 충만> 에서, “거듭남과 믿음의 관계”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라고 칭해 주시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행위로(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란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갈 2:16).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악을 행하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롬 3:12).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미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속죄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갈 2:21).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은 우리가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셋째로, 의화(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화는 사람의 영(spirit)이 성령(the
Holy Spirit)으로 말미암아 거듭난(regenerated, born-again) 것을 말합니다(영이 거듭난 사람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성화는 영이 거듭난
사람(의화가 된 사람)의 혼(soul, mind)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생동안 거룩하게 변화되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의화는 성화의 원인이고 성화는 의화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화와 성화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해서, 우리의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의화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성화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참조>: 믿음의 의미(믿음이란 무엇인가?)와, 우리가 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웹블로그 9번.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는,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할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말씀에서, "그를 믿는 자" 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 를 말합니다. 여기서 "믿는" 은 현재분사시제입니다. 믿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believing in 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계속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여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에 좌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영접할 때),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지(구원해 주시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경은 분명,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 증거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롬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 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모든 인간은 우리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를 유전받아(원죄 or 유전죄라고 말함) 죄를 짓게 되어, 하나님과 분리되었고(관계가 이미 끊긴 상태임), 영적으로 장님이며 귀머거리이며, 그 죄값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선고(지옥의 형벌을 수반함)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섬길 수도 없고, 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이 심하게 타락하여, 누구도, 온전한 선행을 통하여 구원(의롭다 칭함을 받는 일)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전혀 선행을 행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선행이 하나님의 율법에 전혀 어긋남이 없이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을 만큼 온전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으로 인하여 오직 죄인으로 판명될 수 밖에 없고, 아무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슴을 인정해야 합나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갈 2:21 ...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는 구원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구원은 세가지: 의화, 성화, 영화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의화(칭의; Justification)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값으로 인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을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2000여년 전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셨습니다(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슴).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우리 죄를 자백하고(회개),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Our spirit is saved from the
penalty of sins). 그것이 의화입니다. 그래서, 의화는 우리의 혼(soul)과 몸(physical body)의 구원에 관한 일이 아니고,
우리의 영(spirit)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의화)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그 일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거듭나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이루어 집니다(롬 5:1).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우리의 영이 거듭남; Born
again or regenerated spiritually)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이 죽어 있는 상태로는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을 수가 없고, 영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증거합니다(요한복음
3:5). 여기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은 조건절(if)로서,
과거시제 수동태(subjunctive aorist passive)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unless one was not born" 입니다. 또, "들어갈
수 없다" 는 단어는, 부정사 과거시제(infinitive aorist)입니다. 즉, 둘다 과거시제입니다. 따라서, 위의 말씀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천국에 결코 들어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는 결단코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죄의 형벌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수 있게 되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되며, 명실 상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갖는 것은 우리의 영이 거듭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함부로 "믿기만 해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선행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와 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 아버지는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셔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그 일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큰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리 값비싼 희생을 치루셨을지라도, 구원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수혜자가 되어야 할 우리들이 그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준비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아담의 선악과 타락 사건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죽은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타락하여,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적용하시기 위해,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안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셨습니다(벧전 1:23).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
10:17). 우리의 영이 거듭나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성령)과 교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우리의 혼)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회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이 거듭난 결과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결코 아닙니다(엡 2:8). 거듭남과 의화는 우리의 일생에서 단 한번 일어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요 1:12~13..."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위의 말씀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시제를 확인해 보면, 우리는 구원의 진리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영접하는 자"는 영어로, "All who received"
입니다. "Received" 는 단순과거 시제입니다. 따라서, 문법에 맞춰 번역하면, "영접하는 자"는 실제 "영접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셨으니" 또한 단순과거입니다. "하나님께로서 (거듭)난 자들” 에서 "(거듭)난" 또한 단순과거입니다. 단순과거는 과거에 딱 한 번 있었던 일을 표현할 때 쓰는 시제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과거시제(aorist)는, 어떤 사건이나 일들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발생하고 종료되었을 때 사용하는 시제입니다(과거 사건의 완성). 예를들어, 우리가 과거 어느 시점에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것을 표현할 때 성경은 단순과거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위의, "믿는(believing) 자들" 에서 "믿는" 은 현재분사시제입니다. 현재분사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시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믿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성령으로) 거듭나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미 영접했고 지금 계속 믿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거듭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정되었슴을 의미합니다. 한번 자녀는 영원한 자녀입니다.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요 10:28).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면,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엡 1:13~14...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말씀에서도 의화의 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도... 구원의 복음을 듣고 ...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서 "받았으니" 는 단순과거 시제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고, 믿었고, (믿는 가운데),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그들은 예수를 믿은 후, 성령세례까지 받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구원은 이미 확정되었슴을 의미합니다. 의화의 교리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 (참고) 웹블로그 10. "하나님의 자녀로의 거듭남, 성령의 세례와 충만" 을 참조 바랍니다.
또, 아래의 말씀을 통해서도, 위와 같은 결론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1)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2) 또한 낳으신(3)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4) 자를 사랑하느니라(5).”
John 5:1 “Whoever believes(1) that Jesus is the Christ is
born(2) of God and everyone who loves Him who begot(3) also
loves(5) him who is begotten(4) of Him.”
위의 말씀과, 그 말씀 안에 사용된 단어들(1번에서부터 5번까지)의 문법을 살펴보면,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는”(believing: 헬라어: 피스테우온: Pisteuon)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믿는”(believing): 분사, 현재시제, 능동태(participle present active);
실제 의미: (현재) 믿고 있는 사람” (believing person)
위의 말씀 안에는 헬라어 동사 “낳다” (동사원형은 Gennao임: 의미는 생명을 출산하다: give birth)가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게게네이타이: (2)의 경우; 게네이산타: (3)의 경우; 또, 게게네이메논: (4)의 경우입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난”(Born: 헬라어: 게게네이타이: gegeneitai) 자니....:
“난”(born): 현재완료시제, 서술형, 수동태(Indicative perfect passive);
실제 의미: (현재) 믿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자라는 말임(헬라어 문법에 맞게 번역하면: "is born of God" 이 아니라, "has been born
again of God" 임). 즉, 그가 믿는 것은, 그가 거듭났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임을 의미함.
누군가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계속) 믿는 사람(영접한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거듭난 결과로 나타난 일입니다(우리가 믿어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것은, 단 한번의 사건(one time activity)이지만, 그 효과는 지속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것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은 결코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 예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자녀로 남아 있게 됨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3) ....또한 “낳으신”(Begot: 헬라어: 게네이산타: geneisanta)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낳으신(Begot)”: 분사, 과거분사시제(participle aorist); 과거분사(과거 진행형)는 그 다음에 나오는 주동사(5. 사랑하느니라) 이전에 (계속) 이루어졌던 일(낳으셨던 일:
having begotten)을 설명하는 동사입니다.
실제 의미: (과거에) 우리를 (성령으로) "(계속) 낳으셨던(having
begotten)"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라는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4) 자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4) ....그(하나님)에게서 “난”(Begotten: 헬라어: 게게네이메논: gegeneimenon) 자를....:
“난”(the Begotten): 분사(진행형), 완료시제, 수동태(participle perfect
passive):
의미: 그에게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계속) "낳음을 받아 왔던" (having been begotten) 사람을 의미함: 즉, 과거에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해
왔던 사람(과거완료 진행형);
그러면, 과거에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해 왔던 그 사람은 누구를 지칭합니까? 거듭난 신자를 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단수를 사용하고 있고, 정관사(the)를 사용하는 것만을 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시제가 과거진행형 수동태임을 볼 때, 그것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듭나 온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특정한 한 사람(그리스도)이 아니고, 지금까지 거듭난 여러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당연히 맞습니다.
(5)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love: 헬라어:
아가파: agafa):
“사랑하느니라”: 현재형 동사, 서술형, 능동태;
헬라어 현재형 동사는 연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거나,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발생하고 있는) 과정에 있슴을 가리킵니다.
의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거듭난) 성도들을 (계속) 사랑한다는 말;
<결론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예수님)을 사랑하고, (거듭난)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슴을 확실히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는 무엇입니까?
성화는 우리의 영(spirit)이 거듭나서 우리의 마음(new heart: new spirit)으로 예수를 믿고(영접하고),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 우리의 생각(mind: head: 머리, 혼: soul)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약 1:21), 타락한 육신(flesh)을 이기고, 죄의 능력을 이기며(overcome power of sin), 예수님의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화는 우리의 영(spirit)과 몸(physical body)의 구원에 관한 일이 아니고, 혼(soul)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의화(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의 영이 거듭나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한순간에 완성되지만, 성화는 한순간에 완성될 수가 없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mind)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오염된 성품으로 인하여 온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안에서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죽었다가,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기까지, 우리는,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깨끗하고 완전한 육체를 결코 가질 수 없고, 여전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한 육체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타락한 육체(죄성을 가진 육체)를 성경은 "육신"(flesh)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사도 바울조차 자기 육신(flesh)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이유이고(롬 7:18), 우리가 우리의 생각(mind)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우리가 육신(flesh)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롬 12:2; 엡 4:22-23; 롬 8:12-14). 그것은, 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마음(heart)과 목숨(soul)과 뜻(mind: 생각: 머리: head)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마 22:37-40).
성화의 과정과 속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면, 우리의 성화의 속도는 그만큼 늦어질 것이고,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면, 그만큼 우리의 성화는 빨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 나가라고 요구합니다(빌 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롭다함을 받지 않고서는(영이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성화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련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궤변일 뿐입니다.
우리가 성화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어지고, 또, 기도하고, 순종함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면,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죄를 이기며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부득이 하게 죄를 범하게 되면,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다시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것처럼, 성화도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성화는 속도를 내게 됩니다.
영화(Glorification)는 무엇입니까?
영화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 후, 부활할 때, 죄가 전혀 없는(removal of presence of sin), 완전한 몸으로 변화받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를 완전한 성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의 영과 혼의 구원에 관한 일이 아니고, 우리의 몸(physical body)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다음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이미 성화와
영화를 이루었슴을 증거합니다.
무엇을 시사합니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의
구원은 이미
확정 되었슴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믿기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성화를 이루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주장은
절대적으로 잘못입니다.
에베소서
2:4-7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단순과거시제임),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고린도전서
1:30 "....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단순과거시제)."
로마서 8장 30절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단순과거시제)."
위의
말씀에서 단순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을
증거합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였다면, 우리는 이미 의롭다함을 받았고(과거이므로 당연히 과거로 표현함), 성화되었고(현재형이지만 과거형으로 표현함), 영화롭게 되었슴(미래형이지만 과거형으로 표현함)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성화는 물론이고
영화의 상태에까지
도달했슴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고
나서 선행을
해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영접함으로)
확정되었슴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행을 하고,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의화(칭의)를
얻은 그리스도인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주장이기에
성경에 어긋나는
주장이고, 더
나아가, 성화가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통해
굴곡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도외시한
말이므로, 결코
올바른 주장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고 선행을 해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 속의 "구원의 말씀"과 "심판의 말씀"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우리가 구원의 말씀과 심판의 말씀을 혼동하지
않고 잘 구분한다면,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행을 행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5:31-46 입니다.
v.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의인)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v.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악인)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v.46...저희(악인)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위 구절은,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여겨지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임금이 그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단지 그의 행실에 의해서만이 아닙니다. 그의 행실의 배후에 있는 믿음에 의해서 입니다. 선한 행실의 배후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선한
일을 한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악한 행실의 배후에는 불신이 있습니다. 자기의 불신 때문에 악한 일을 한 자는, 영벌에
처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속에서, 믿음의 여부를 발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을 인정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선을 행할 때 입니다.
믿음은 선행을 만들어 냅니다. 선행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과 선행은 같이 갑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진리는,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거룩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행위로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씀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는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습니다.
실례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에 위배되지가 않습니다. 마 5:19을 보면,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의가 아무리 바리새인보다 클지라도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우리의 의는 여전히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의를 믿으면,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의만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 25:31-46 에서, 마지막 심판 날에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선행을 한 사람은 영생을 얻고, 선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영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선행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줄 믿습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인정받을 만한 선행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에 대해 증거합니다. 롬 2:6-11 에서 그는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선이든 악이든 그들의 행위에 따라 공평하게 보응하신다고 말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악과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와 환난과 곤고로 보응하신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왜 그와 같이 증거한 것일까요?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은 그들의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게 됨을 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선행을 하게 될 것이고, 믿음이 없다면 악을 행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고후 5:10 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증거합니다. 롬 14:10 에서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 말합니다. (기타, 고전 3:13-15; 갈 6:7-9).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 구원을 받게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상급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들은 순종한 만큼 상급을 받게 되지만, 불순종한 사람들은 그만큼 상급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을 증거하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7:36-48 을 보면,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사하실 때에, 한 여인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머리에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v.47 에서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그녀는, 그녀의 행동과 사랑으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v.50 에서, 예수님은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그녀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슴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2:20 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
이라고 말합니다(약 2:26 참조). 이 말씀은
“우리는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절을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만 합니다(기본적인 이해: 야고보서는 불신자에게 쓴 서신이 아니고, 구원받는 교회 공동체에 쓴 서신임). 야고보는 v.23-24에서, 연이어 증거합니다. v.23-24...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그를 의로 여기셨슴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v.22에서, 이미, '그의 믿음이 그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그의 믿음이 완성되었다는 말이지, 그가 순종하기 이전에는
믿음을 전혀 갖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믿었고 이미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그의 행함으로(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증명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가,
v.24에서, '사람이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부인하기 위해서 가 아닙니다. 그는,
참된 믿음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행함으로 입증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참된 믿음은 행함이 수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우리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변치 않는 진리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습니다(요 3:16; 1:12). 성경에서, ‘우리는 믿음만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진리의 말씀에 위배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그들을 심판(판단)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의 씻김을 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죄의 씻김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11-14 을 보면, 한 바리새인은 자기가 뭔가 선행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가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은 그가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선행만을 본다면, 그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실제 그런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그 바리새인은 옆에 있는 세리만 죄인이라 생각했지, 실상 자신은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그와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완전한
의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행함이 구원을 받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위의 원인이고, 행함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칭의(의화)와 성화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이고 칭의는 성화의 원인입니다. 그 두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성화되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화는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화(칭의)를 얻은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변치않는 진리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5:4 에서, 예수님은, ‘…..만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6절에서는), 그렇게 되면, 떨어진 가지와 같이 되는데, 그 가지는 밖에 버리워 말라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땔감으로 쓰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위 말씀을 해석할 때,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 해도, 열매 맺지 못하면 버림을 당하게 될 것처럼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섯부른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5:4말씀은, 요한복음 15:2 말씀을 배경으로 해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2에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록
나무에 붙어 있을지라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는데, 그런 가지는 농부이신 아버지가 제거해
버리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그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그저 외적으로만, 형식적으로만 붙어 있고, 실질적으로 한 몸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실상,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빗대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고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 사함의 은혜와 열매를 맺을 수가 없고 심판을 피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안에도 그와 같이 육에 속한 사람들(natural man)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죄사함의 열매가 결코 나타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5:3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 말씀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증거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이미 깨끗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그들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았다: 의화의 열매를 맺었다는 말임).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성화의 열매입니다. 그러니, 성화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요한복음 15:4의 일부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누구든지
믿기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말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의화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23 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행위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시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왜 우리가 거짓선지자를 삼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은 노략질하는 이리이면서도 겉으로 양의 옷을 입고 행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열매를 통해 그들이 참선지자가 아니라 거짓선지자임을 드러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외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것처럼 보였고, 아주 경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거짓선지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분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했고, 여전히 죄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원어: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지 않고(즉, 회심이 없고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이), 오직 입으로만 부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은, 어떤 선한 일들을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6:40). 따라서,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주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3). 우리는 이전에, 우리의 타락한 육신의
소욕을 좇아, 세상풍조와 방식대로, 넓고 쉬운 길을
좇아 수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성도들은, 더이상 우리의 자아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세상 방식을 다 버려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방식을 좇는 삶입니다(갈 2:20). 그러나, 그런 삶은, 당장, 악인들이나 이 세상 사람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더 나아가 그들에 의해,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되고, 많은 환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행 14:22; 딤후 3:12). 그래서, 그런 삶은,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생과 아름다운 열매와 상급을 보장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6:9-11 에서,
그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 6:9-11..."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왜 그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과거와 같은 죄를 더이상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성화를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은 갈 5:19 이하에서도, 그러한 메시지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해 육신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죄악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을 경계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v.19). “이런 일(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v.2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죄를 조금이라도 범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더이상 과거의 불신자처럼 (육체를 따라 삶으로써), 육체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육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슴을 믿고) 오직 성령을 좇아 삶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는 과거에 다 부끄러운 육신의 일들만을 행하여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오직 예수님의 놀라운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불의한 자였습니다. 이모양 저모양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죄를 지속해서는 안됩니다. 죄를 끊고 선행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본분입니다.
요한1서 1:8-9 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위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자칫 잘못하여 죄를 범한다면, 그 즉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회개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일이, 우리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만 가능함을 반증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행위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붙드심과 간섭하심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우리의 어떤 선행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주시는 선물임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속적인 성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4. 하나님은 먼저 은혜로(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또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복과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 첫째는, 우리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아 주시는 일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았다면, 우리는, 순종과 선행을 해야만 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때때로 죄를 범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 우리는 또다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라” 고 명령하셨습니다(롬
1:17).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처럼 하나님 없이, 우리 자신의 방식대로, 우리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욕을 십자가에 완전히 못박고, 오직, 성령의 소욕에 따라, 하나님의 뜻만을 쫒아 사는 삶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롬 6:1-14; 8:1-4; 갈 2:20, 5:24; 요 15:1-5).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 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5:31). 그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전혀 관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냥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특히, 오랫동안)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간섭과 징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특히나 회개하지 않을 때), 우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고난(연단)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에는,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곧장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의 범죄는 (그들의 구원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이 땅에서 복을 상실하도록 만들며 천국에서도 상급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자신이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 까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구원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이미 얻은) 상급을 지키고, 더 큰 상급을 얻고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고전 9:27). 따라서, 우리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 땅에서) 상응하는 복을 내려 주시고 천국에서도 상급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 버린다는 말이 성경의 증거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용서를 구하면, 미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다시 정결케 하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선행을 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요일 1:9).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성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5. 만일, 예수님을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성화를 이루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성화가 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어느 누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요구합니다(요일 5:13; 엡 6:17; 살전 5:8).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하셨고,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땅에서,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고난가운데에서도, 신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만을 좇을 수 있습니다.
6.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잘못 오해하고 악용하는, 사이비 이단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이비 이단들(예를들어, 구원파...)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었다면, 당신은 당신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이니 더이상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도 죄책감 때문에 울고 불고 하는 것은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은 앞뒤가 맞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는 죄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면서도 죄의식이 없고, 회개하지도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신앙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으니,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어도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무책임한 말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을 중도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구원받는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요 14:15, 21; 요일 2:3-4, 5:3; 계 14:12) 거룩하게 살라고 요구하시며(고전 3:17; 살전 5:23; 벧전 1:15-16),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4:5). 예수 믿고 이미 구원받은 자의 삶은 장차 천국에서 상급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번 얻은 구원을 잃어 버리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왜곡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이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어떤 사소한 죄까지도 결단코 범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만일 부득이하게 죄를 범할 경우에는, 즉시 회개하고 다시금, 믿음과 순종으로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야만 합니다.
7.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성경은 구원(의화; 칭의)을 말할 때,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인종과 신분과 성별의 차이나, 사람의 자질이나 덕의 수준과도 무관하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선한 일을 해도, 우리의 선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여전히 죄인일 뿐입니다(사 64:6; 딤전 1:15).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선을 행하되, 우리의 공로를 결코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은, 눅 18:11-14 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을 서로 대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 자신은 남들처럼 죄를 범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들을 지킨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시종일관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입고 집에 내려 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바리새인은 남보다 의로운 사람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자신의 외적인 의로움만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규례를 다 지키고,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자복하면서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했을 때,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증거합니까?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슴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값비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항상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결코 안되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예, 롬 12:1-2; 엡 4:20-5:2). 값비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엡 2:10). 그래서, 우리는, 빌립보서 2:12 의 말씀처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만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 입니다. 성화는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받는 자의 삶의 과정이고 목표입니다. 그런데, 성화 역시도 칭의(의화)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도서 3:5 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8.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1) 성경은 행위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은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선행을 해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로마서 3: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시 14:1 이하, 시 53:1 이하〕
이사야 64:6..."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2) 하나님은
오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디도서 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롬 10:9-10).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여, 의롭다함을 받고(롬 3:24),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아무도 그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롬 8:1-2; 요 10:28).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값없이 의롭다함(구원)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성화). 그래서, 성화는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전 과정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때, 우리에게 이 땅에서 복을 주시고 천국에서 상급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마 22:37-40).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세례(최초의 성령충만임)와 지속적인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롬 8:14). 그러면, 우리는,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9. 구원 받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만 하고, 또,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야만 합니다.
로마서 8: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Romans 8:1-4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2)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s set you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3) for God has done what the law could not do in that it was weak through the
flesh,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to deal with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4)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do not walk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사도 바울은
위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면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사도와 복음 전도자가 된 바울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선을 행하기를 원했지만, 자기의 몸으로는 악을 행하는 것을 발견하고 과연 누가 자신의 사망의 몸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악을 행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 때문에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그의 육신(flesh) 안에 죄(Sin)가 살아 있어서 그 죄가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한 것(the evil)을 행하는 이유는 우리의 육신 안에 있는 죄(Sin: 단수임: 헬라어: Hamartia)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실을 냉정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락한 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죄를 심판하심)는 것을 믿었고(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 구원의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이모양 저모양으로 죄를 지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마땅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성령을 좇아 삶으로써 율법의 요구(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육신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의 타락한 육신(Sinful flesh)의 소욕(요일 2: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롬 6:10-11). 이제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한 몸이 되어)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결론>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임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믿기만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믿어도 선행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다고 말해야지, 믿기만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믿어도 선행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러한 잘못된 주장은,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부추깁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외적인 행위와 전통에만 집중하게 만들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바리새인과 같이 믿음은 없고 행위만 있어도 마치 구원받은 사람처럼 착각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의롭다 함을 받는다)" 는 말을 변질시켜서, "믿기만 한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있어야만 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신앙인으로 보기에 의심스럽게 여겨지는 일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일을 잘 성수하지 않거나 하나님이 정하신 예물(예, 십일조: 말라기 3:10)을 잘 드리지 않거나, 또,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계속 죄를 범하거나,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 것들을 볼 때, 그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그 영이 거듭나고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변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 사람의 거듭난 영과 함께 계셔서 그의 삶을 간섭하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으로 세례(최초의 성령충만: 행 1:5, 2:4)를 주시고, 또,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그로 하여금 선행을 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행 4:31).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유지하지 못하면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그리스도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구원받은 사람)은, 전심으로 기도함으로써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눅11:13), 또,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엡 5:18)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행을 하며 이 땅에서도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엡 2:10).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참고):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는 <웹블로그> 10. “하나님 자녀로의 거듭남, 성령의 세례와 충만”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제목: “믿음으로 사는 삶”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COWKc9D_7PJ1vi9GBLEn78iAIUuiPHWO/view?usp=sharing
<첨부자료>: 로마서 6:23 “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선물)"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hDTcaDAGMhMnnnQKOjzMdmtoQRHUu0p6/view?usp=sharing
<첨부자료>: “제목: 개신교의 몇가지 구원론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CDHwhJUAy2C65sV2qWolX_8n3h_SaPZY/view?usp=sharing
<참조>: 신앙생활의 실패 요인과 해결책: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안내>:
이 웹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이 11가지 제목의 글이 들어 있습니다. 각 제목 아래에 있는 웹사이트를 직접 클릭하시면 글을 바로 열 수 있으니 클릭하셔서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11.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11.html
10. 하나님의 자녀로의 거듭남, 성령의 세례와 충만: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10.html
9.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9.html
8. 우리는 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가?: (이 페이지임)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8.html
7. 악의 문제: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7.html
6. 종말을 대비하십시오(첨부: 요한계시록 요약, 도표):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6.html
5.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5.html
4.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4.html
3.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3.html
2. 모든 종교가 다 구원을 보장할까요? (첨부: 종교 비교표):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20/01/2.html
1.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https://blessednews.blogspot.com/2013/0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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